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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을 보다 보면 참 묘하다. 분명 밉상인데 또 완전히 미워지지가 않는다. 어떤 장면에서는 한숨이 나오고, 또 어떤 장면에서는 웃음이 나다가, 불쑥 가슴이 찌릿해지는 순간도 찾아온다. 그냥 허구의 캐릭터로만 보기엔 너무 현실적이고, 그렇다고 완전한 악역도 아니다.
특히 한때 회사에서 부장님 눈치 보며 살던 20대 시절이 떠오르는 사람이라면, 김부장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예전에 마주쳤던 그 ‘부장님들’ 얼굴이 겹쳐 보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캐릭터는 더 공감되고, 더 짠하고, 더 불편하다. 어쩌면 지금 우리의 현재이자, 앞으로 마주하게 될 미래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1. 첫인상부터 익숙하다: “우리 회사에도 꼭 한 명씩 있는 그 부장님”
김부장을 처음 마주했을 때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이거다. “아, 이런 사람 우리 회사에도 있었는데.” 말투, 행동, 자존심 세우는 포인트까지 하나하나가 낯설지 않다.
괜히 후배들한테 오지랖 부리고, 애매한 상황에서는 윗사람 눈치부터 살피고,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소심하게 피해가려다 더 꼬이는 스타일. 그런데 또 결정적인 순간에는 책임감 때문에 자기 혼자 짐을 다 떠안는다. 현실의 직장인들이 너무 잘 아는 그 얼굴이다.
캐릭터가 특별해서 인상적인 게 아니라, ‘너무 익숙해서’ 인상적인 경우다. 이 익숙함이 곧 공감으로 이어지고, 공감은 결국 감정이입으로 변한다. 그래서 우리는 어느 순간, 김부장을 비판하면서도 동시에 그를 변명해주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2. 짠함의 원천: 40대(혹은 50대) 가장이라는 이름의 무게
김부장을 그냥 답답한 꼰대로만 보기 어려운 이유는, 그의 행동 뒤에 붙어 있는 거대한 꼬리표 하나 때문이다. 바로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40대 가장’이라는 타이틀이다.
겉으로 보면 안정적인 삶을 산다고 여겨지는 위치다. 집도 있고, 다니는 회사도 ‘대기업’이고, 나이도 적당히 올라가서 관리자급이고, 남들이 보기엔 “그래도 잘 살고 있네”라는 말이 쉽게 나오는 조건이다.
그런데 이 타이틀이 그에게는 보호막이 아니라 족쇄에 가깝다. 회사에서 흔들리면 집도 흔들릴 수 있고, 가장의 자리가 위태로워지면 자신의 존재 가치 전체가 같이 무너져 내릴 수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사소해 보이는 일에도 과하게 집착하고, 조직 안에서 자신이 차지하고 있는 작은 권위를 놓지 않기 위해 버틴다. 이 버팀에는 단순한 고집이 아니라, “여기서 밀리면 내 뒤에 있는 가족까지 위험해질 수 있다”는 생존 본능이 숨겨져 있다. 이 지점에서부터 그의 짠함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3. 밉상의 정체: 자존심과 열등감이 뒤엉킨 어른의 민낯
김부장이 밉상처럼 느껴지는 순간은 주로 이럴 때다. 후배들 말을 제대로 들으려 하지 않고, 본인 방식만 고집하거나, 괜히 승진이나 업무 배분 문제에서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 때.
그런데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그 밑바닥에는 자존심과 열등감이 동시에 얽혀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한때는 능력으로 인정받던 시절이 있었고, 본인 나름대로 “열심히 하면 되는 시대”를 살아왔던 사람이다. 그래서 “내가 틀린 건 아닐 텐데”라는 자존심이 남아 있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하다. 세대가 바뀌고, 일하는 방식이 바뀌고, 조직이 원하는 사람의 모습도 변했다. 예전엔 먹히던 스타일이 이제는 ‘꼰대’로 취급받고, 본인의 노력은 성과로 잘 드러나지도 않는다.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마음으로는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태다.
그래서 그는 애매한 지점에서 계속 흔들린다. 후배들을 대할 때도 진심으로 도와주고 싶어 하면서, 동시에 자신이 밀려날까 봐 방어적으로 굴게 된다. 이 모순 덩어리 같은 감정이 김부장을 밉상으로 만들면서도, 인간적으로 이해하게 만드는 포인트다.
4. 결국 터지는 순간: 상무와의 치고받고 싸움
드라마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결국 김부장이 상무와 정면으로 부딪치는 순간이다. 그동안 쌓이고 쌓였던 불만과 억울함, 회사에 대한 분노, 자신에 대한 실망감까지 한꺼번에 터져 나온다.
표면적으로는 상사와 부하 직원 간의 갈등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장면은 훨씬 더 많은 의미를 품고 있다. 김부장 입장에서는 “나는 이렇게까지 버텨왔다”라는, 일종의 마지막 몸부림이다. 그동안 참고, 눌러 담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지나왔던 수많은 순간들이 한 장면에서 폭발하는 셈이다.
이 싸움은 이긴다고 해서 인생이 갑자기 달라지는 종류의 사건이 아니다. 승진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고, 누가 박수를 쳐주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장면이 묵직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나 자신을 포기하지 않겠다”라는 그의 마지막 자존심이 보이기 때문이다.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웃기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처절하다. 웃픈 대한민국 40대 가장의 현실이 압축된 장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5. 미워할 수 없는 이유: 결국 김부장은 ‘우리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김부장이 가진 매력은 완벽함에서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허점투성이에, 모순 덩어리에, 감정 조절도 잘 안 되고, 때로는 철없어 보이기까지 하는 모습에서 나온다.
그런데 그 허점이 너무 인간적이라서, 어느 순간부터는 그를 통해 나 스스로를 보게 된다. 회사에서 어딘가 불안한 자리, 애매한 책임, 어정쩡한 권한 속에서 버티는 사람들. “여기서 버티는 게 맞나?” 고민하면서도 당장 내일 출근을 준비해야 하는 사람들. 이 모든 사람들이 조금씩 김부장 안에 들어가 있다.
그래서 이 캐릭터는 한편으로 짠하고, 한편으로는 밉고, 또 한편으로는 안아주고 싶어진다. 미워하면서도 끝내 잘라내지 못하는, 이상하게 정이 가는 누군가처럼.
20대 때 회사 다니며 바라보던 부장님은 솔직히 말해서 이해보다는 불만의 대상에 가까웠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씩 알 것 같다. 그때 그 부장님의 표정 속에, 말하지 못했던 불안과 책임, 그리고 체념과 자존심이 뒤엉켜 있었다는 걸.
드라마 속 김부장을 보며 그 시절의 부장님이 떠오르고, 동시에 앞으로의 나 자신이 겹쳐 보이는 순간, 이 캐릭터는 더 이상 단순한 밉상이 아니라, 우리 세대의 초상화로 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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