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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하이재킹〉을 보고 나면 한 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그 시절엔 비행기 탈 때 진짜 그렇게 쉽게 탑승했을까?” 지금은 공항에서 신발을 벗고, 금속 탐지기를 통과하고, 액체류 제한까지 받지만 1970년대 이전엔 이런 절차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1960~70년대 전 세계를 뒤흔든 하이재킹 사건들이 공항 보안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승객 검색, 금속 탐지기, X-ray 수하물 검사 같은 제도는 바로 이 시기에 태어났다.

🚨 1960년대: 자유로운 하늘, 그러나 너무나 위험했다

1950~60년대 항공은 일종의 ‘로맨틱한 여행 수단’이었다. 표만 있으면 공항 게이트로 바로 들어가서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고, 탑승 전 보안 검색도 없었다. 심지어 공항에 가족이 함께 들어가 배웅하는 것도 가능했다.

하지만 이 느슨한 시스템은 곧 큰 문제를 낳았다. 1968~1972년 사이 전 세계에서 300건이 넘는 항공기 납치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쿠바로 비행기를 돌리려는 납치가, 한국에서는 북한 납북 시도가 이어졌다.

🧍 1970년대: 금속 탐지기와 무장 보안요원의 등장

1969년 대한항공 YS-11기 납북 사건, 그리고 1971년 F27기 납치 미수 사건은 한국 항공보안의 전환점이었다. 정부는 즉시 다음과 같은 조치를 시행했다.

  • 탑승 전 금속 탐지기 설치
  • 수하물 및 승객의 전면 검색
  • 국내선 및 국제선에 무장 보안요원(항공보안관) 탑승
  • 조종석과 객실을 분리하는 강화 도어 설치

이런 제도는 당시에는 매우 낯설었지만, 이후 전 세계 항공사들이 동일한 조치를 취하게 된다. 미국에서도 1973년부터 금속탐지기 검색을 의무화했고, 이 시점을 항공보안의 ‘시대 구분선’으로 본다.

🔍 1980~1990년대: X-ray 검사와 액체류 제한의 시작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기술이 발전했고, 공항 검색대에는 X-ray 수하물 검색기가 도입됐다. 칼, 총기, 폭발물 등 위험물 탐지가 가능해지면서 승객 검색은 한층 더 정밀해졌다.

1990년대에는 폭발물 테러 시도 사건이 연달아 발생하면서 액체류와 스프레이류 제한, 휴대용 전자기기 검사 같은 새로운 규정이 만들어졌다.

🛫 오늘날의 항공보안, 그 시작은 70년대

지금 우리가 공항에서 거치는 모든 절차는 1970년대 하이재킹의 교훈에서 비롯되었다. 신발을 벗고, 금속탐지기를 통과하고, 노트북을 꺼내는 번거로움조차 수많은 희생과 사건을 통해 만들어진 ‘안전의 절차’다.

영화 〈하이재킹〉은 그 불안했던 시대를 되짚으며, 우리가 얼마나 체계적이고 안전한 하늘을 얻게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 한눈에 보는 변화 연표

  • 1960년대 – 공항 검색 無, 자유로운 탑승
  • 1969년 – 대한항공 YS-11 납북 사건 발생
  • 1971년 – F27 납치 미수, 무장 보안요원 제도 도입
  • 1973년 – 금속 탐지기 전면 도입 (미국·한국)
  • 1980년대 – X-ray 검색기 도입, 폭발물 탐지 강화
  • 1990년대 – 액체류 제한 및 보안 규정 세분화
  • 2001년 이후 – 9·11 테러 이후 국제 공항보안 강화

🪶 마무리

비행기를 타기 위해 신발을 벗는 일상이 불편함이 아니라 ‘안전의 증거’가 된 지금, 1970년대의 혼란스러운 시대를 돌아보는 건 의미가 있다.

영화 한 편이 던지는 질문 — “우리가 지금 누리는 안전은 어디서 시작됐을까?” 그 답은 바로, 하이재킹이 남긴 교훈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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