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세입자에게서 “보일러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연락을 받았다. 13년째 된 보일러였으니 수명이 다 된 것도 있었지만, 막상 교체를 하려니 고민이 생겼다. “이런 경우 수리비는 누가 내야 하지?” 임대인으로 살다 보면 이런 상황은 의외로 자주 생긴다. 보일러, 수도, 도배, 장판 등 고장이 났을 때 법적으로 어디까지 집주인이 책임지고, 어디서부터 세입자 부담인지 알아두면 훨씬 깔끔하다.
1. 기본 원칙 — 집주인은 집을 ‘사용 가능한 상태’로 유지해야 한다
주택임대차보호법 제623조는 이렇게 규정한다.
“임대인은 목적물을 임차인이 계약 기간 동안 사용·수익할 수 있도록 필요한 상태를 유지할 의무가 있다.”
즉, 세입자가 정상적으로 사용했는데 노후나 자연적인 마모로 고장 난 경우, 그건 집주인의 책임이다.
- 10년 넘은 보일러가 자연 고장난 경우
- 오래된 수도배관이나 변기 부속이 닳아서 누수된 경우
- 콘센트나 전등 스위치가 오래돼서 작동하지 않는 경우
이러한 항목들은 모두 임대인이 수리해야 하는 범위다. 수도, 전기, 가스, 난방 등 기본 설비는 ‘집을 사용할 수 있는 최소 조건’이기 때문이다.
2. 세입자가 부담해야 하는 경우 — 관리소홀과 부주의
임차인의 고의나 과실로 생긴 고장은 세입자 부담이다.
- 겨울철 외출 중 보일러 전원을 꺼둬서 배관이 얼어버린 경우
- 욕실 배수구를 청소하지 않아 물이 역류한 경우
- 세탁기 배수호스를 제대로 연결하지 않아 누수된 경우
이런 사례는 관리 소홀, 부주의, 과실로 인정돼 수리비를 세입자가 내야 한다. 실제 분쟁조정 사례에서도 “장기간 외출하며 보일러 전원을 꺼둬 동파가 발생했다면 임차인 과실”로 판정된 바 있다.
3. 도배·장판·가구는 애매하지만 기준이 있다
벽지나 장판은 가장 헷갈리는 부분이다. 법원 판례는 “정상적인 사용으로 인한 변색이나 훼손은 세입자 책임이 아니다.”라고 명시한다.
- 햇빛에 의해 벽지가 누렇게 바랜 경우
- 2년 이상 거주하며 장판이 자연스럽게 닳은 경우 → 집주인 부담
반면, 세입자가 벽에 못을 여러 개 박거나 낙서로 심하게 훼손했다면 세입자 부담이다. 핵심은 ‘자연적 마모냐, 인위적 손상이냐’를 구분하는 것이다.
4. 가전제품은 소유권이 기준
빌트인 가전(에어컨, 냉장고 등)은 집주인 소유물이므로 고장 시 원칙적으로 임대인 부담이다. 다만 계약서에 “가전제품은 편의 제공용으로, 수리·교체 의무 없음”이라고 명시돼 있다면 예외다. 이 문구 하나로 분쟁이 크게 줄어든다. 가전이 포함된 임대라면 계약 단계에서 책임 범위를 명확히 문서로 남겨두는 게 좋다.
5. 분쟁을 예방하는 방법
- 입주 전 사진을 남겨라.
세입자가 입주 당시 상태를 찍어두면 나중에 책임소재를 명확히 할 수 있다. - 계약서에 특약을 추가하라.
“보일러, 수도, 전기 등 주요 설비는 임대인 부담, 경미한 수리는 임차인 부담” 같은 문구를 넣으면 분쟁을 예방할 수 있다. - 문제 발생 즉시 소통하라.
세입자는 고장 사실을 바로 알리고, 임대인은 미루지 말고 조치해야 한다. 방치로 악화되면 책임이 더 커질 수 있다.
6. 항목별 정리표
| 항목 | 원인 | 수리비 부담 |
|---|---|---|
| 보일러 고장(노후) | 자연적 마모 | 집주인 |
| 보일러 동파 | 세입자 과실 | 세입자 |
| 수도 누수 | 부속품 노후 | 집주인 |
| 세탁기 배수 누수 | 연결 부주의 | 세입자 |
| 벽지 변색 | 자연 변화 | 집주인 |
| 벽 낙서, 구멍 | 훼손 | 세입자 |
7. 마무리
결론은 간단하다. 정상 사용 중 생긴 문제는 집주인, 부주의로 생긴 문제는 세입자. 이 원칙만 기억하면 대부분의 갈등은 예방된다. 임대인도 세입자도 서로의 책임선을 명확히 알고 신속히 대응하는 것이 최선이다. 특히 오래된 주택을 임대 중이라면 설비 유지·수리는 비용이 아니라 ‘신뢰 관리’의 일부로 보는 것이 현명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