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인스타그램에서 보게된 도린케천의 연주. 클라리넷이라고는 할 수 없는 자유로운 연주와 흑인 특유의 소울이 결합되어 소름끼치는 연주를 하고 있었다. 그 후로 관심을 갖고 지켜보게 되었고, 이렇게 블로그 포스팅까지 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선 조금은 생소한 도린 케천에 대해 한 번 정리해보고자 한다.
1. 도린 케천은 누구인가?
도린 케천(Doreen J. Ketchens)은 1966년 10월 3일, 미국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에서 태어난 재즈 클라리넷 연주자다. 그녀는 딕시랜드(Dixieland)와 트래디셔널 재즈(Trad Jazz)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수십 년 동안 뉴올리언스 프렌치쿼터 로열 스트리트에서 거리 공연을 이어온 인물이다. 단순한 버스킹 연주자를 넘어, 전 세계 콘서트홀·재즈 페스티벌·미국 대사관 공연까지 누비며 뉴올리언스를 대표하는 문화 아이콘으로 불리고 있다.
별칭도 화려하다. 강력한 고음을 뽑아내는 연주 스타일 덕분에 “Lady Louis(여자 루이 암스트롱)”, “Clarinet Queen(클라리넷의 여왕)”, “Ms. New Orleans” 같은 별칭으로 불린다. 루이 암스트롱의 연주를 사랑하고, 그의 에너지를 클라리넷으로 옮겨온 사람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2. 트레메에서 시작된 어린 시절
도린 케천이 자란 동네는 뉴올리언스에서도 특히 음악과 퍼레이드 문화가 살아 있는 트레메(Tremé) 지역이다. 거리에서는 늘 브라스 밴드가 행진하고, 장례식조차 재즈 행렬로 이어지는 도시에서 그녀의 귀는 자연스럽게 리듬과 즉흥 연주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었다.
클라리넷을 잡게 된 계기는 꽤 우연에 가깝다. 초등학교 5학년 때, 학교 밴드에서 “악기를 배우고 싶은 학생은 모여라”라는 안내가 나왔고 도린은 원래 플루트를 선택하려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미 플루트 지원자가 너무 많았고, 선생님이 “클라리넷은 어떠냐”고 권유하면서 지금의 악기를 선택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이 한 번의 선택이, 훗날 ‘클라리넷의 여왕’을 탄생시켰다.
이후 그녀는 학교 밴드와 지역 합주단에서 실력을 키웠고, 고등학교 시절에는 지휘자의 강한 훈련 아래 매일같이 연습하며 클래식 클라리넷 기초를 탄탄히 쌓아 갔다.
3. 클래식에서 재즈로, 그리고 남편과의 만남
도린은 대학에 진학해 본격적으로 음악을 공부하면서 오케스트라 인턴십을 경험하는 등 클래식 연주자로서의 커리어도 준비했다. 하지만 그녀의 인생을 완전히 재즈 쪽으로 틀어놓은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이후 밴드 동료이자 남편이 되는 튜바/수자폰 연주자 로렌스 케천(Lawrence Ketchens)이다.
두 사람은 뉴올리언스의 로욜라 대학교에서 만나 함께 연주를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재즈 클라리넷이라는 길을 걷게 된다. 1980년대 후반, 도린은 공화당 전당대회 공연에 참여하면서 첫 재즈 공연을 경험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 무렵부터 그녀는 “무대 위 연주자”를 넘어 “거리와 사람 속에서 호흡하는 재즈 연주자”로 변신한다.
4. 로열 스트리트에서 세계 무대로
도린 케천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장소가 바로 뉴올리언스 프렌치쿼터의 로열 스트리트(Royal Street)다. 그녀는 이 거리에서 수십 년 동안 거의 매주 연주를 이어왔다. 작은 앰프, 밴드 멤버들, 그리고 지나가던 사람들로 즉석에서 만들어지는 관객. 이 모든 것이 도린의 무대이자 연습실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무대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미국 재즈 페스티벌, 유럽·아시아·아프리카 등 세계 각국의 공연장과 미국 대사관 초청 공연까지, 도린은 점점 더 넓은 무대로 나아갔다. 또한 빌 클린턴, 조지 H. W. 부시, 로널드 레이건, 지미 카터 등 네 명의 미국 대통령 앞에서 연주한 경력도 있다. 언론에서는 그녀를 “뉴올리언스의 문화 대사”라고 부르기도 한다.
2020년대에 들어서도 활동은 멈추지 않는다. 재즈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협연, 교육 프로그램, 마스터클래스 등 다양한 자리를 통해 자신의 음악을 나누고 있다. 2022년에는 뉴욕 파이브 타운스 칼리지(Five Towns College)에서 명예 음악 박사 학위(Doctor of Music)를 수여받으며 “Dr. Doreen J. Ketchens”라는 타이틀도 얻게 되었다.
5. 왜 ‘클라리넷의 여왕’인가?
도린 케천의 연주를 한 번만 들어봐도 “아, 이 사람은 클라리넷으로 노래를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 압도적인 고음과 호흡 – 루이 암스트롱을 연상시키는 강력한 고음과, 그 음을 오래 끌어가는 호흡이 그녀의 트레이드마크다.
- 클래식과 재즈의 결합 – 어릴 때부터 쌓아 온 클래식 테크닉 위에 뉴올리언스 재즈 특유의 즉흥성과 소울을 더해, 악보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재창조”한다.
- 관객과의 소통 – 거리에서 단련된 덕분에, 관객이 박수 치고 환호할수록 연주가 더 뜨겁게 끓어오른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 교육자로서의 면모 – 청소년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워크숍과 마스터클래스를 진행하며, “자기만의 소리를 찾으라”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전한다.
이런 요소들이 합쳐져, 도린 케천은 클라리넷 하나로 재즈, 가스펠, 블루스, 스탠더드 넘버를 넘나들며 완전히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냈다.
6. 꼭 들어봐야 할 도린 케천 연주 영상
글로만 읽기에는 아쉬우니, 인상적인 연주 영상 몇 개를 링크로 남겨둔다. 이어폰 끼고 한 번만 제대로 들어보면 ‘왜 사람들이 이 사람을 클라리넷의 여왕이라고 부르는지’ 바로 느껴질 것이다.
- When the Saints Go Marching In – 스트리트 라이브
뉴올리언스 거리에서 관객들과 함께 열기를 끌어올리는 대표적인 영상. 고음과 애드리브, 관객 반응까지 다 들어 있는 도린 입문용 영상이다. - House of the Rising Sun – 깊이 있는 발라드 연주
느린 템포에서 펼쳐지는 호흡과 표현력, 그리고 소울이 폭발하는 연주. 클라리넷이 이렇게 “사람 목소리”처럼 들릴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 Just a Closer Walk with Thee – 오케스트라 협연
루이지애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한 연주로, 관현악과 재즈 클라리넷이 어떻게 어울릴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무대다. - New Orleans Jazz Fest Full Performance (2024)
비교적 최근 재즈 페스티벌 풀세트 영상으로, 그녀의 현재 진행형 에너지를 가장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7. 마무리 – 한 번 꽂히면 빠져나오기 힘든 소울
우연히 인스타 릴 하나로 시작된 관심이, 알고 보니 수십 년 동안 뉴올리언스 거리를 지켜 온 한 재즈 연주자의 긴 여정으로 이어졌다. 도린 케천의 연주는 “클라리넷은 이렇게도 연주할 수 있다”는 걸 아주 과감하게 보여준다.
악기를 배우는 사람에게는 ‘틀을 깨는 용기’를, 그냥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몸이 먼저 반응하는 리듬’을, 그리고 재즈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조차 “이건 그냥 좋다”라는 직관적인 감동을 준다.
만약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위에 올려둔 영상 한두 개만이라도 꼭 들어보길 추천한다. 나처럼 우연히 스크롤 내리다가 만난 한 연주자가, 올겨울 내내 귀와 마음을 사로잡는 새로운 최애가 될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