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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케스트라에서 배운 건 연주만이 아니었어요 (동기부여, 롤모델, 부작용까지)

by Three Bro 2025. 9. 11.

우리 아이는 첼로를 혼자 연습하던 시절보다, 오케스트라에 들어간 이후 훨씬 더 많이 성장했어요. 단순히 실력뿐 아니라 음악을 대하는 태도와 생각, 심지어 감정 표현까지도 달라졌습니다. 함께 연주한다는 것, 다른 사람의 소리를 들으며 나의 소리를 조율해 간다는 경험은 그 자체로 큰 자극이 되었어요. 오늘은 아이가 오케스트라에서 배우고 자라나는 모습을 담담히 적어보려 합니다.

음악은 혼자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처음 느꼈어요

처음 첼로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아이는 조용히, 그리고 외롭게 연습했어요. 레슨을 받는 시간 외엔 혼자 방 안에 들어가 악보를 보고, 스스로 소리를 익히고, 때로는 실패하고 실망하고, 다시 악보를 덮기도 했죠. 그 시절에도 나름대로 즐겁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지만, 혼자 하는 연습엔 한계가 있었어요.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건지, 소리가 정확한 건지, 전체적인 흐름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전혀 감이 없었거든요.

그러다 오케스트라에 들어가면서 상황이 확 바뀌었어요. 처음엔 그저 함께 모여 연습하는 단체라고 생각했지만, 연습에 들어가 보니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졌죠. 각 파트가 나눠져 있고, 모든 소리가 하나로 어우러져야 하며, 지휘자의 손짓 하나에도 민감하게 반응해야 했어요. 우리 아이는 처음엔 조금 당황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듣는 자세’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자신의 소리뿐만 아니라 바이올린, 플루트, 트롬본 등 다른 악기들의 소리를 인식하고, 전체 흐름 속에서 첼로의 위치를 이해하게 된 거죠. 아이가 집에 와서 처음으로 “오늘 트롬본 소리가 진짜 멋졌어”라고 말했을 때, 저는 이 변화가 단순한 기술 향상이 아니라 감각의 성장이라는 걸 느꼈습니다.

롤모델이 생겼다는 건, 아이에게 정말 큰 변화예요

오케스트라에 들어간 이후 가장 눈에 띄는 변화 중 하나는, 아이가 '닮고 싶은 사람'을 처음으로 말하기 시작했다는 거예요. 지휘자 선생님은 늘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정확하고 따뜻하게 지도해주시는데, 그 모습이 아이에게 깊이 각인된 것 같아요. "나도 저 선생님처럼 되고 싶어"라고 말하는 걸 듣고, 아이가 단순히 음악을 좋아하는 단계를 넘어 누군가처럼 되고 싶다는 ‘목표’를 가지게 됐다는 걸 실감했어요.

그리고 함께 연주하는 언니, 오빠들의 모습도 마찬가지였어요. 고학년 언니들의 연주를 따라 하려고 하고, 활을 쓰는 자세나 손목 움직임, 심지어는 숨 쉬는 박자까지 유심히 지켜보면서 스스로 연습할 때 적용해보더라고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따라 배우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는 건, 정말 큰 변화라고 생각해요. 혼자 연습하던 때에는 그런 자극이 거의 없었거든요.

이제 아이는 음악을 ‘단지 좋아하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누군가처럼 되고 싶은 분야’로 받아들이고 있어요. 그런 태도는 결과적으로 연습 태도, 집중력, 무대에서의 자신감 등 모든 면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동기부여도, 부작용도 함께 따라왔어요

물론 좋은 변화만 있는 건 아니에요. 아이가 다양한 연주자들과 어울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비교도 생기고, 때로는 부러움도 감정으로 올라오더라고요. 예를 들면 “저 오빠는 라센-스피로꼬레 현을 쓴대” 같은 말을 하기도 했어요. 처음엔 저도 당황했어요. 아직 첼로 시작한 지 2년도 안 된 아이가 벌써 장비를 따지는 게 과한 게 아닐까 싶었죠.

하지만 곧 깨달았어요. 이건 질투나 허영심이 아니라, 자기가 음악 안에서 더 나아가고 싶은 마음의 표현이라는 걸요. 물론 저는 아이에게 그렇게 말해요. “물론 좋은 악기도 중요하지만, 지금 네가 얼마나 연습하고 음악을 좋아하는지가 훨씬 더 중요해.” 비교가 무조건 나쁜 건 아니에요. 비교를 통해 자극받고, 자극을 통해 더 좋은 방향으로 노력하는 힘도 생기거든요. 다만 그 감정을 건강하게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중심을 잡을 수 있도록 옆에서 말과 태도로 도와주는 게 제 역할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연습 태도는 분명하게 달라졌어요. 혼자 하던 시절에는 “하기 싫어”라는 말을 자주 했는데, 요즘은 오케스트라 연습이 있는 날엔 스스로 악보를 꺼내보고, “이 부분은 다시 해봐야겠어”라고 말하며 활을 잡아요. 무언가를 스스로 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 거예요. 강요 없이 스스로 움직이는 아이의 모습이 그 어느 때보다 기특합니다.

결론: 함께하는 음악이 만든 아이의 변화

아이에게 오케스트라는 단순히 ‘연주를 더 잘하게 되는 곳’이 아니었어요. 혼자 하던 음악에서 함께하는 음악으로 넘어가는 그 과정에서, 아이는 놀라울 정도로 자랐고 변화했어요. 누군가를 닮고 싶다는 마음, 다른 사람의 소리를 들을 줄 아는 귀, 부러움과 비교 속에서 생기는 자기 성찰,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 악기를 잡고 싶어지는 내적 동기까지. 모든 게 오케스트라라는 공간 안에서 만들어졌어요.

앞으로 이 변화가 얼마나 더 이어질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확신해요. 이 경험이 아이에게 단순히 음악 실력을 키우는 것 이상의 의미로 남을 거라는 걸요. 아이가 음악 안에서 성장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저 역시 그 곁에서 조금 더 좋은 어른이 되어가고 있습니다.